영상으로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 가지는 의미
2024-03-19
‘디지털 리터러시에서의 영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제작되어 있는 영상에서 올바른 정보를 분별해내고, 바람직하지 않은 영상을 분류해내는 능력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리터러시’라는 단어의 뜻이 ‘읽고 쓰는 능력’인 것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디지털 리터러시’에는 영상을 편집하는 능력까지도 포함된다. 영상을 올바르게, 혹은 바람직하게 편집한다는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영상을 제작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영위하는 일상을 더욱 소중하게 기록하기 위해, 그 일상의 조각을 오랫동안 간직하기 위해 영상이라는 매체가 적절히 사용된다면 그것 역시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종이에 자신의 생각들을 문장으로 풀어내다 보면 감정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 날 있었던 일을 적어놓은 글을 보면 꼭 다시 그 때의 일이 되풀이되는 것처럼 생생해진다. 그러나 자신이 느낀 점을 글로 풀어놓는 것이 어려운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들 중에는 바쁘게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기억이 휘발되는 것을, 일상 속의 사소한 기억이 흩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기록’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분명히 있을 것이다.
디지털 문화와 스마트폰 속의 세상에 익숙해지면서 많은 이들이 ‘기록’이라는 행위에 대해 부담감을 가진다. 이는 꾸준히 일기를 쓰는 것, 그리고 나의 생각을 기록하는 것이 책상 앞에 앉아 종이를 펼치고 펜을 잡고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행위에 의해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삶을 기록하는 건 펜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조각을 기록하는 데에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그 중에서 ‘영상’이라는 방법을 택해 삶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디지털 영상 매체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디지털 리터러시의 실천 행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디어 기자단으로 활동하고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한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해본 경험이 드물었다. 그래서 ‘곰믹스’ 프로그램을 이용해 기억 한 구석에 저장되어있던 유럽 여행에서의 추억 조각을 꺼내 보았다. 영상으로 일상을 기록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밥을 먹고 친구를 만나고 운동을 하는 것과 같이 반복되는 일일지라도 그 날의 나에게 의미 있었던 순간을 아주 짧은 영상 클립에 담아 24시간을 60초 이내의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
별다른 편집 기술이 없어도 손쉽게 그 날을 기록할 수 있다. 일상 속에서 5-10초 내외의 짧은 순간을 기록하고 이어붙이기만 하면 된다. ‘인스타그램 릴스’가 일상을 기록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면서 이 방법을 이용해 특별한 날의 기억을 저장해두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튜브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브이로그 형식으로 그 날의 내가 느꼈던 감정, 했던 생각을 자막과 함께 기록하는 것.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영상을 볼 때마다 함께 떠올릴 수 있다. 특정 기간을 정해두고 특별한 일이 생길 때마다 영상을 찍고, 그 클립에서 남기고 싶은 부분들만 컷 편집을 한 뒤 자막을 넣는 방식으로 편집이 이루어진다. 영상을 찍을 때마다 ‘트랙’에 촬영한 영상들을 넣어두고, 하루의 끝이나 일주일의 끝에서 일기를 쓰듯 영상을 편집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블로그에 삶을 기록하듯 사소한 것까지 모두 남겨두기 좋다. 구도와 색감에 얽매이지 않고 편안하게 촬영해 개인적으로 소장하기 위한 브이로그를 제작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촬영본만을 엄선해 좋아하는 BGM과 함께 하나의 영상으로 남기는 것.
여행에 대한 기억을 기록하고 싶을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뮤직비디오를 만들듯이 적절한 음악을 찾고, 가장 잘 찍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클립들을 이어 붙인다. 촬영을 할 때부터 기록을 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영상들이 많아서 모든 클립을 편집하고 나면 하나의 작품을 만든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세 번째 방법을 이용해 유럽에서 촬영한 영상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만을 추리고, 어울리는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선정해 보았다. 여행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는 줄 알았는데, 그때의 기억들을 한 곳에 모으고 그 날의 감정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니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도 안 된 것처럼 기억들이 선명해졌다.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여행이 영상 하나로 압축되었기 때문인지, 여행에서의 힘들었던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행복만 모여 하나의 형태를 갖춘 것이 이 영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통해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개념이 거창한 것이 아님을, 내가 나의 일상을 소중하게 기록하기 위해 영상이라는 매체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 역시 디지털 리터러시임을 알게 되는 이들이 많아졌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글을 통해 삶을 기록하는 것이 어려웠던 사람들이 영상을 바탕으로 하루를 기록하는 방법도 있음을 알게 되어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